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01-23 10:46:13
기사수정

심리상담연구소 심지 소장 김 이 수

신년 기자회견. 한 기자의 뜬금없는 질문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쓴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 너무나 비판적이라 기사 쓰는 게 겁이 난다며 하소연을 했는데 이에 대한 대통령의 대답은 신선했다. 자신도 많은 비난과 반대 의견을 겪은 정치인인데 그 모든 것이 국민들의 각기 다른 의견이라 생각한다며 기자님도 너무 긴장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여보시라고 권했다. 신년 기자회견에 어울리는 질문이었느냐 말이 많았지만 상담자인 나로서는 그런 화제보다 대통령이 자신을 반대하는 이에 대해 받아들이는 방식에 눈길이 갔다. 무엇보다 방학을 맞아 오랜 시간 자녀와 함께 있으며 의견 충돌을 경험하는 부모님들에게 뭔가 못마땅한 자녀들의 말과 행동을 그들의 의견이라 생각하고 조금 담담하게 받아들여보시라 권해드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인가는 별개로 하고 말이다.
상담 장면에서 부모와 자녀가 차갑게 갈등하는 지점은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아주 소소하고 작은 지점에서 시작한다. 기상시간, 밥 먹는 일, 공부, 핸드폰, 게임, 예의 없다 싶은 말투나 행동 같은 일상의 한 장면들이다. 딱히 이걸 뭐라 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별일 아니라 넘어가다가 어느 한순간에 크게 다투게 되면 그동안에 쌓여있는 스트레스들이 터져나와 갈등이 깊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갈등이 되면 그 마음의 힘겨움은 작지 않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중엔 우리가 왜 그때 싸웠는지 그 사건의 발단이나 과정은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단지 그때 마음이 상해 내뱉은 독한 말들, 험한 행동이 강한 인상들이 마음에 깊은 생채기로 남는다. 실재 서로가 바랬던 행동의 개선이나 더 좋은 방향에 대한 검토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자녀와의 갈등 지점에서 나와 다른 이의 의견이라고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수용하고 대화하는 것, 말은 쉽지만 우린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현재의 부모세대는 특히나 부모에게 순종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었던 문화에 살았고 ‘바르다’라는 개념에 부모의 뜻에 순종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 시대는 변하고, 개성 있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말하고 자신의 뜻을 당당히 펼쳐가지 못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상담실에 오게 되는 주제들도 예전에는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이 충돌해서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당하기만 하는 것 같은 착한 아이가 걱정이 되어 상담의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더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능력도 중요해진 세대임을 반증하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율배반적으로 내게 당돌하게 거절하는 자녀를 다른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라 수용하는 부모,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왜일까. 대다수의 부모들은 본인의 자녀들의 요구에 수시로 반대를 하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자녀의 반대 의견의 진의를 수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부모 역시 스스로 가진 답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성공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가치관이 적어도 부모가 아는 한 자신의 의견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성공을 가져올 확률이 높을 거라는 이유 때문일 테다.
언젠가부터 성공하는 것이 당연하고 실패하면 불행한 시대를 살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로 성공이 오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부모에게 자녀의 혼란과 실패는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곧잘 불행의 씨앗으로 여겨지게 된다. 자녀가 살면서 학교 현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대인관계의 실패, 교사와의 갈등, 학업과 실력에서의 부진 어쩌면 누구나 살면서 당연히 경험해야만 하는 과정 중에 일부일 텐데 그 과정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주관적인 행복감, 우리나라는 십 년 전부터 OECD 국가 중 최하위 국가다. 네팔이나 에티오피아 보다도 우리는 더 불행하다고 느낀다.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달게 된 것도 오래전 일이다. 하루에 35명 자살이라는 이 어마어마한 통계청 자료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우리에겐 행복을 누리는 삶보다 불행을 헤쳐나가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내란이 있는 나라보다도 빈곤이 만연한 나라보다도 우리는 행복하다 느끼는 것이 낯설다. 또한 언제 부턴가 우리에게 부지불식간에 스며든 ‘성공해야 행복하다 ‘라는 이 비합리적인 명제는 수많은 과정 속의 답답함, 실패와 착오들, 혼란과 두려움, 불안을 모두 불행한 것이라 여기게 한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에드 디너는 세계 150여국의 주관적 행복감을 연구하면서 특히 한국에서 나타나는 낮은 주관적 행복감에 놀라워했다. 그의 유명한 종적 연구 중에는 17살 때 주관적인 행복감이 높은 사람이 40대의 연봉이 높다는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17살. 그가 스스로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마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 가보다 얼마나 행복을 누릴줄 하는 능력을 갖추었는가가 관건일테다.
박수와 갈채가 쏟아지는 성공만이 행복이어서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 고민하고 방황하고 답답해하고 혼란스러운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조금씩 견디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 분명한 과오가 있다면 정직하게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신에 대한 신뢰, 실패와 좌절로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용기, 힘겨움에도 함께 힘이 되어주는 우정, 그 모든 과정 속에 숨어있는 행복을 발견하는 실력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비결은 아닐까.
부모가 먼저 그 지난한 과정 속의 행복을 찾아볼 능력을 갖추어야만 자녀에게 이런 행복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고 알려줄 수 있다. 모든 것이 넉넉지 않은 와중에도 의미를 찾고 희망을 놓지 않는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은 어쩌면 모든 것의 결과가 불안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실력일지도 모른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가득한 하늘.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것들이 있다. 이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 속에 행복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토라져서 말하지 않는 자녀와 함께 힘겨워하는 부모들이 있다면 어쩌면 그 과정안에 나와 다른 자녀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보석이 숨겨져 있진 않은지, 함께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능력을 찾아가는 용기를 내어 보시길 간곡히 권해드리고 싶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gjcitizen.com/news/view.php?idx=363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