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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3 10: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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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 “여기 보자!”, “움직이지 말고, 주목!”, “자세 바로 하렴!”, “누가 떠드나?”, “필기 다 끝냈니?”, “숙제 안 한 학생 앞으로 나와!”, “다음 시간 숙제는 공식 외워오기다!” 등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들이다. 수업에서 흔하게 듣는 교사들의 잔소리이다. 교사들은 여러 학생들을 통제하기 어려워 이같이 외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학생들은 침묵 속에서 머리로만 학습을 하게 된다. 한창 활발히 움직이고 떠들면서 소통하고 주위를 둘러볼 시기에 말이다.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 수학자가 한국에서 수학콘서트를 펼쳤다. 그는 바로 『수학하는 신체』(에듀니티, 2016)의 저자 모리타 마사오이다. 그는 1월 22일(월)부터 1월 24일(수)까지 한국의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만나 수학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들려줬다. 한마디로 수학은 ‘수’에 대한 학문이 아니며 ‘정서’로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수학콘서트는 지난해 3월부터 수학교사들과 마을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수학으로 어깨 빌려주기’라는 독서모임에서 출발했다. 이미 지난해 6월에는 모리타 마사오의 책을 갖고 비판적인 공개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그때 『수학하는 신체』의 저자 모리타 마사오를 직접 불러다 얘기를 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되었고 이번 겨울방학에 실제로 이뤄졌다. ‘어깨 빌려주기’란 말은 뉴턴이 기존의 학자들이 정립한 학문의 세계에서 도움을 얻었다는 의미로 사용했었다.
‘수학으로 어깨 빌려주기’ 교사들은 스토리펀딩을 통해 수학콘서트를 개최할 수 있었다. 교사들은 입시 교과목만의 수학이 아니라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수학을 깨닫기를 바랐다. 또한 수학은 단지 더하기 빼기만이 아니라 역사성을 띠고 변모해가는 진리의 체계라는 점을 강조한다. 수학은 배워야 할 모든 것이다. 특히 삶의 의미를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시나 미술과 같이 수학이 필요하다.
신체가 가진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수학은 절실하다. 아울러, 수학적 상상력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깨닫게 해준다. 멀리, 더 멀리 사고가 가능한 것이다. 한편, 모든 시민을 위한 수학이 필요하며, 절대적인 지식이 과연 있는 것인지 의심해야 한다고 스토리펀딩에서 강조됐다. 요컨대, 수학교육이 바뀌기 위해선 교사와 교육정책가, 학부모들 모두가 바뀔 필요가 있다.
모리타 마사오는 TED 강연에서 ‘정서’로서의 수학을 강조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게 바로 수학이라는 활동이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온전히 집중하는 것에서부터 수학하는 신체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위대한 작곡가들이 있고 그 작품들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이 있다. 그런데 위대한 수학적 발견은 수학자들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모리타 마사오는 수학연주회를 열어 좀더 많은 사람이 수학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한다.
모리타 마사오가 강조한 ‘정서’로서의 수학은 오카 기요시라는 수학자가 강조한 자세다. 수학사에 큰 정점을 찍은 오카 기요시는 최근 국내에 번역된 『수학자의 공부』(사람과나무사이, 2018)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책상에 앉아 책만 보고 공부하기보다는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마음으로 수학을 배우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진정한 수학이란 칠판에 쓰인 글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군자의 수학'이라 부른다.”
수학교육의 목적은 계산이 아니라 내면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주위의 자연을 애틋한 마음으로 관찰하는 게 필요하다. 몰입하고 사색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몰입은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것이다. 오카 기요시는 수학이란 내면에 이미 갖춰져 있는 정서를 문자판에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의 수학교육은 100분 동안 30문제를 초집중해서 풀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수학문제들은 수학교사들이나 강사들이 풀어내기에도 벅찰 정도로 어렵다. 그런 문제들을 학생들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훈련하며 학습을 한다. 수학적 발견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말이다. 물론 시험이라는 게 아예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교육이란 보이지 않는, 선의의 경쟁의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좀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왜 수학공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비단 수학교육뿐만 일까. 우리나라 교육의 전반이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고 학업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정책과 학부모들의 욕망이 함께 똬리를 틀고 있다. 학부모들은 제 자식이 좀 더 많은 문제를 풀고 좋은 성적을 거둬 사회에서 성공하길 기대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학생들을 밀어붙이면 밀어붙일수록 저항감이 커지고 학습은 지지부진해진다는 사실이다. 요즘의 학업에서 요구하는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는 절대 문제 풀이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더욱이 정서와 배움에 대한 태도가 없이는 평생 이뤄져야 할 교육이 단기간에 수단으로서만 끝날 가능성이 높다.
모리타 마사오가 한국에 와서 얘기한 부분들은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 다른 방식의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만약 내가 수포자라면 그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학을 못한다고 질책한 교사들과 이미 틀에 가둬놓고 억압하는 교육정책, 그리고 학부모들의 지나친 기대와 욕망이 함께 뒤섞여 있다.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작 중요한 학습이 요원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모리타 마사오의 주장들이 정답은 아니다. 그와 오카 기요시가 말하는 ‘정서’로서의 배움이 과연 무엇인지는 애매모호하다. 내 안에도 여러 정서가 있을 텐데 그 가운데 무엇이 빛이고 어둠인지는 배워가는 입장에서 모를 수 있다. 또한 과연 수학이 수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면 어떻게 자연을 해석하고 관계에서 소통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학습하는 개별자를 넘어서 교육하는 보편자로서 확장되기 위해선 수와 수학이라는 학문적 체계는 필요한 게 사실이다.
압축 성장을 위해서 과학기술을 수단으로서만 활용해온 게 우리나라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노벨상을 하나도 타지 못한 건 상 자체의 한계를 넘어 안타까운 게 사실이다. 연구자들이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학생들이 배움의 정수를 느끼지 못하는 한 노벨상은 먼 나라 얘기다. 그래서 계산보다 ‘정서’로서의 수학을 복원하자는 모리타 마사오의 수학콘서트는 교육혁신의 작은 발단이 될 수 있다. 수단으로서의 배움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서의 학습을 복원하는 일이 결국 창의성을 배양한다. 지름길만 선호하다 보면 정작 가야 할 곳에 이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호 성문밖학교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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