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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09 21: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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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 학생과 우연히 상담을 진행했다. 현재 나이는 20살인데, 고등학교 3학년으로 성문밖학교에 다니고 있다. 고민이 많았고 방황을 좀 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청소년 시기에 1∼2년은 매우 예민한 시기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늦은 게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강조해도 어떻게 이해하랴. 그래도 상담을 해주는 교사의 입장에선 최선을 다해 얘기를 나눴다.
그 학생은 수학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놀란 사실이 있다. 예제 문제를 답을 보며 공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수학 공부를 답을 보며 공부하다니. 다행히 확인 문제나 연습 문제는 직접 도전해보고 있었다. 절대 수학 문제를 답보면서 공부하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여러 번 고민을 해본 후에, 정말 마지막에야 모르는 문제에 대해 답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수능 시험을 목표로 공부 중인 그 학생은 마음이 급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은 공부하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제1순위는 바로 ‘조바심(조급함)’이라고 했다.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바심을 물리치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상담을 마치면서 일주일 정도라도 좀 쉬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인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같이 고민해보자고 했다. 다음에 다시 얘기를 해보자고. 며칠이 지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에겐 행복한 수학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긴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공부하는 게 즐거워야 하는데, 억지이자 고통이 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 배우는 것인데, 공부가 학생을 우울하게 하다니. 그런데 행복한 수학을 발견했던 적이 있다.
이번 겨울에 ‘수학으로 어깨 빌려주기’라는 어른들의 수학 공부 모임에선 일본인 수학자 모리타 마사오 씨를 데려와 3회 수학콘서트를 연 바 있다. 모리타 마사오 씨의 책은 『수학하는 신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이 책을 읽다가 직접 저자를 데려와 수학콘서트를 개최한 것이다. 국내엔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3박 4일간 모리타 마사오 씨는 전국을 누비며 강연을 개최했다. 수학교육의 혁신적인 모습을 보인 그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모리타 마사오 씨와 함께 한 수학콘서트는 대한민국에서 수학교육의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그동안 수학교육은 획일화의 공교육과 지나친 사교육이 이끌어왔다. 그런데 겨울에 열린 수학콘서트는 다른 수학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의미가 상당하다. 다른 수학이란 계산 문제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생각의 깊이에 맞닿아 보는 것이다.
모리타 마사오 씨가 주목한 전 세계적인 수학자 오카 기요시는 수학 시간에 그림을 계속 보도록 했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정리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매시간 그림만 하염없이 보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으면, 수학적 사고에서도 사고를 확장하고 깊은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계산만 하다보면 사람은 이기적일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하고 깊은 사고가 가능하다면 공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후부터는 시간만 있으면 학습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조는 경전을 인용해 매사에 정성을 다하라고 신하들에게 당부했다. 마음가짐이야말로 공부의 출발이다.
수학콘서트는 수학교사들과 지역의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행복하게 수학콘서트를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구체화 한 것이 바로 수학콘서트였다. 스토리펀딩으로 3백여 만 원을 모으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이 십시일반 후원하고 도움을 주면서 응원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수학콘서트였다. 특히 『수학하는 신체』의 저자 모리타 마사오 씨와 역자 박동섭 박사가 함께 해서 더욱 즐거웠다. 필자는 마치 일본의 만담(漫才)을 보는 듯한 유쾌함을 느꼈다. 모리타 마사오 씨는 학생들과 함께 수학을 활용해 상상하고 정서를 쌓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계산보다 정서가 훨씬 더 가능성 있는 교육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수학으로 어깨 빌려주기 모임에선 올해 국내 수학자 혹은 수학교사와 함께 수학콘서트를 개최해보려고 한다. 모임의 수학교사들과 활동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펼쳐볼 수 있도록,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대안 모델이 되도록 하기 위해 준비해볼 예정이다. 물론 사전에 더욱 많은 논의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다른 수학, 행복한 수학을 찾아서 다시 여정을 떠날 것이다.
상담을 했던 학생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동서양의 철학자인 공자와 칸트는 비슷한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 칸트는 지성이 배제된 감성은 맹목적이고, 감성이 배제된 지식은 공허하다고 했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갈수록 이 말들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미친 듯이 공부만 해서도, 그렇다고 책을 멀리하고 생각만 많이 해서도 안 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답을 보면서 문제를 풀고 싶은 마음, 늦었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신속히 따라잡고 싶었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물어보고 싶은 건 정말 그렇게 하는 게 행복하냐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며 고민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공부라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행복한 수학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어른들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환경 탓만 하기엔 학생들의 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안쓰럽다.
수학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빅데이터와 SW는 모두 수학에 기반하고 있다. 내가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내게 행복한 수학은 무엇일지, 행복한 공부가 되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지 다함께 더 고민해보길 부탁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이 세상은 의미를 상실할 수 있고 중심을 잃어버릴 것이다. 나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찾아야 한다. 행복한 수학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수학의 본질은 자유에 있고 행복을 위해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김재호 성문밖학교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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